케이터>모렌도 요즘 화제로 떠오르는, 나랑은 관계 없을 사람.
"그거 들었어? 마법도 쓰지 못하는 학생이 우리 학교에 입학했대, 첫날부터 대식당에 있는 저 커다란 샹들리에를 마수랑 같이 깨부셨다나 뭐라나..."
"아, 맞다.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 왔다던데?"
케이터가 렌도를 처음 접하게 된 건 한껏 부풀려진 소문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을 땐 험악하기 짝 없는, 온갖 군상의 빌런들이 판을 치는 이 학교에 퍽이나 잘 어울리는 괴팍한 학생이었다. 최근 학생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소문의 학생과의 셀카를 투고하게 된다면 마지카메 팔로워가 급증하는 건 시간 문제, 그런 이유도 있고 또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간 큰 녀석인지 상판떼기라도 보자, 하는 심정이었다. 그저 단순한 가십거리로 밖에 치부 되지 않았다. 잠깐 반짝하고 금세 조용해질 터이니. 더군다나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골칫거리 1학년과 엮여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어차피 나랑 크게 엮일 아이는 아니니까, 딱 거기까지였다.
1학년 A반이라고 했던가? 소문에 의하면 180cm은 거뜬히 뛰어넘는 장신에 전형적인 미남형과는 영 거리가 먼 섬찟한 얼굴을 지녔더래. 허나 케이터의 눈에 비친 건, 여느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지닌 작은 체구의 예쁘장한 여학생. ...여학생? 어떻게 남학교에 여학생이 입학했으며, 마력의 자질또한 단 하나도 없다던데. 묻고 싶었던 게 산떠미처럼 많던 케이터는 이를 빌미 삼아 말을 붙여보려 했었다. 적응하기 바쁠 새학기인지라, 렌도에게 말 붙일 틈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렌도는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기 일쑤였다. 궁금하긴 해도 케이터에게 있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모렌도>케이터 손 끝 한번 스칠 일 없을,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
렌도는 케이터의 뒷모습 조차 보지 못했다.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오기 전의 제 모든 기억을 잃은 와중에 다른 이가 눈에 들어올 리 있나.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과 나이조차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 원더랜드에서 제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교사들도 이 점 때문에 한참이나 골머리를 앓았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렌도에게 있어서 이 곳은 임시 거처와도 같았다.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무사히 입학할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꽤나 바쁜 나날을 보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말이다. 본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소문들에 대해서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종종 귓가에 들려오는 소문들은 터무니 없었고, 본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기에. 이따금씩 짓궂은 학생들이 말을 걸어온 적도 있었다.
이곳이 어디라고 멋대로 발을 들이냐, 하는 등 재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철저히 적대시하는 말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럴 때마다 렌도는 이마저도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무반응으로 일관하였다. 지금의 렌도에게는 시간이 남아도는 일개 몰상식한 학생들을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모진 말들을 내뱉어도 지루하다는 듯 무표정을 지어 보이는 렌도에게 흥미가 떨어진 학생들은 재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둘은 1장의 소동 이후로부터 말을 트게 되었다. 1장 전에는 가끔 오다가다 마주치는 선/후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전에는 마주치게 되더라도 케이터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별다른 대화가 오고 가질 않을 정도로 어색한 사이였다. 케이터와 렌도,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공통된 관심사도, 같은 취미도 무엇 하나 공유하고 있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간에 케이터는 렌도와 관련한 일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 들었다. 얼굴만 아는 모르는 사람, 케이터에게 있어선 지금의 애매한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느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간 뒤에도 약간 아쉽고 마는 정도. 렌도도 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같은 기숙사 출신도 아닐 뿐더러, 어차피 곧 돌아갈 사람에게 과한 정을 쏟는 것도 그리 원치 않았다. 렌도가 보기에 케이터도 자신과 가까워지는 걸 그리 원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엣, 오늘도 도서관? 렌도쨩은 언제나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느낌이네, 보다보면 시계 토끼같아~" "···이곳에 대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해야해요." "그럼 오늘은 케군과 같이 갈까♪ 궁금한 게 있음 뭐든 물어보라구. 일단은 선배니까 뭐든 알려줄게☆"
단순한 호의에서 시작되었다. 분명 시작은 호의였다.